KBS News [남북의 창] 억압·통제받는 일상…지금도 진행중인 ‘명주의 삶’ [통일로 미래로] / KBS 2026.04.25.
![[남북의 창] 억압·통제받는 일상…지금도 진행중인 ‘명주의 삶’ [통일로 미래로] / KBS 2026.04.25.](https://i.ytimg.com/vi/u-yMg___Ce0/maxresdefault.jpg)
북한은 밝고 화려한 평양 거리와 풍요로운 주민들의 일상을 끊임없이 선전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서울에서 북한 인권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특별 전시회 ‘오늘의 명주’가 열리고 있는데요. ‘목숨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명주’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요? 과거의 기록이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 정미정 리포터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문 하나를 열고 들어서자, 펼쳐지는 전혀 다른 세계.
서울 한복판에서 마주한 북한 인권의 실상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며…”]
화려한 선전 속에 감춰진 핍박받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전시를 통해 공개된 겁니다.
[문서영/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분석원 : “선전 뒤 이면에 숨겨진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 명주’라는 이름을 갖고 오늘날에 이뤄지고 있는 북한 인권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지금 제가 들어와 있는 이 공간.
북한 주민의 삶을 재연해 놓은 전시입니다.
이 안에는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북한의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명주’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의 인물을 통해 전달합니다.
[문서영/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분석원 : “명주는 이름으로 보면 자신의 목숨, ‘내 삶은 내가 주인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내 삶이지만 주인일 수 없는 우울한 내용들을 대비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서…”]
네 개의 공간으로 이뤄진 전시.
선전 뒤에 감춰진 고통스런 일상과 집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 감시와 통제, 목숨을 걸고 찾아 들은 바깥세상의 소식, 그리고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강제송환의 공포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북한 인권 연구 자료들과 탈북민들의 기억과 기록들.
인권 침해에 대한 증언은 작은 메모장으로 벽면을 가득 채웠고, 동화책부터 생활용품까지, 겉보기에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물건들도 눈에 띕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고 몰래 라디오를 들어야 하다 보니까 자가 발전이 가능한 라디오예요. (이렇게 돌려서 사용하는구나.)”]
하지만 동화책의 교훈은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과 숭배로 끝맺음하고, 낡은 군화 한 켤레에선 열악한 생활 환경이 드러납니다.
한 탈북민이 기증한 생활 수첩의 내용에선 일상 깊숙이 파고든 체제의 영향력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 ‘혁명’ 이런 것들 이 굉장히 많이 써 있어요.) 맞아요. 북한에선 뭐든 혁명적으로 하자, 해야 한다는 선전을 많이 하거든요.”]
북한 주민과 실제로 나누었던 전화 통화 내용도 공개됐는데요.
불순한 자료를 봤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했다는 끔찍한 내용입니다.
[“(그때 당시에 평양에서 12명이 총살을 당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네요.) 불순 출판물을 봤다는 이유로 그랬다는 거거든요.”]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우리 곁 가까이 다가옵니다.
[윤예지/관람객 : “이번 전시를 통해서 저는 더 통일 문제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막연하고 멀리있던 북한에 대한 생각들이 저한테 더 개인적인 일이 된 것 같아요.”]
이 전시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인데요.
어쩌면 여기에서 마주한 명주의 하루는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탈북민 정지은 씨를 만났습니다.
담담하게 지나온 시간을 꺼내놓는 지은 씨는 2015년경 북녘의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정지은/가명/탈북민 : “북한에서 그래도 (인민)반장도 하고 여맹 (초급단체) 위원장도 하고 했으니까 (하지만) 열 번 공을 세우다가 한번 잘못하면 그 공이 다 무너지고 그 다음에는 직업이 안 되는 거죠.”]
한국에 정착한 자녀들을 찾아 탈북을 감행했지만 중국에서 붙잡히고 맙니다.
[정지은/가명/탈북민 : “탈북했다가 잡혀서 북송돼서 (구금시설에서) 너무 매를 맞아서 제가 1년 7개월을 누워있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눈 떴다가 기절하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었던 시절.
[정지은/가명/탈북민 : “일단 거기에 들어가면 내가 사람이라는 지각을 버려야 돼요. 내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게 오산인 거죠.”]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짙은 상처로 남아있는데요.
[정지은/가명/탈북민 : “너무 맞으니까. 나도 여기 상처가 다 매를 맞아서 생긴 상처에요. 화장을 두껍게 하고 다니는 편이죠.”]
네 차례에 걸쳐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송환을 당한 탈북민 최민경 씨에게도 당시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구금시설은 물론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인 함경북도 12호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떠올립니다.
[최민경/탈북민 : “제일 힘들었던 건 당연히 생존권인 배고픔이고, 3평 남짓한 데에 30명씩 구겨 넣으니까 사람 냄새, 이, 벼룩, 빈대, 때문에 자지를 못하니까 이게 사람이 있잖아요. 다 뜯기고 나니까 그게 그렇게 고통스럽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고문있잖아요, 고문. 그리고 단체 체벌이 있어요.”]
민경 씨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북한 당국을 상대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그녀에게 국제 사회의 관심은 큰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제59차 유엔인권회의에서 최초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거예요.”]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4년 연속 채택됐습니다.
국제 사회와 인권단체의 꾸준한 조사와 기록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송한나/북한인권정보센터장 : “사회에 나온 여러 (탈북민) 분들을 만나고, 가능하면 러시아나 중국이나 제3국에 현장 조사를 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20년간 15만 건의 기록과 증언을 축적해 온 북한인권정보센터.
하지만 코로나 이후 국경이 봉쇄되면서 북한 내부의 정보와 인권 문제를 직접 확인하기는 더욱 힘들어진 상황입니다.
[송한나/북한인권정보센터장 : “북한 주민들이 폐쇄된 국가에서 더 폐쇄되고 분리된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나라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기록을 마주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할 텐데요.
[최민경/탈북민 : “이걸 역사에 기록을 하고, 우리 세대들이 앞으로 미래 통일 세대들이 북한을 알아가는 게 그게 평화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과거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북녘 주민들의 일상이기도 한 ‘명주’의 삶.
한반도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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